[글로 타는 인력거] 불경기 잊은 크리스마스 이브 02

불경기 잊은 크리스마스 이브 02

낮상권인 북촌은 포기한다

북촌 정독도서관에서 안국역 앞 입구까지는 가파르진 않은 내리막길이다. 대체로 페달을 밟지 않아도 동력 없는 수레 따위는 잘 굴러갈 수 있는데, 인적이 드물 때 이곳은 개인적으로 온갖 폼과 허세를 부리며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노년에 이때를 회상한다면 항상 이곳을 질주하며 내려가던 순간이 기억날 것이다.

 북촌은 유명한 관광지가 된 지 오래지만 술을 파는 유흥 상권은 아니다. 오후 7시-8시를 기점으로 아무리 사람이 붐비는 주말이라도 텅 비어 버리곤 한다. 보통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일하고자 하는 시기가 왔을 때는, 그래서 모든 라이더가 북촌을 떠나 더 남진한다. 최근 가회동 31번지 한옥마을 주민들의 불편함에 관련된 기사, 관련 시위 때문에도 그렇고 더 이상 북촌은 밤에 무언가 할 공간은 아니라는 공감대는 널리 퍼져 있는 상태이긴 하다. 필자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초과 근무, 신기한 것을 본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공략

여전히 인력거는 널리 알려진 보편적 관광수단은 아니기에, 길거리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들이 투어 서비스 구매를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가장 설득하기 쉬운 대상은 바로 가족. 그것도 아이와 함께 연말에 시간을 내어 어려운 외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가족이다. 이럴 때 필요한 라이더로서의 능력은 바로 아이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 과하지는 않게, 그저 아이들과 만나면 눈인사를 길게 하며 최대한 활발히 자전거를 움직여본다. 

. 먼저 말을 걸기 전에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속보이는 처사, 아이를 빌미로 부모님들께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 같아 스스로 정한 원칙이다. 사실 눈인사만 잘 해도 아이들은 스스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러 온다. 우선 아이들과 말만 트게 되면 부모님들과의 대화는 일사천리.
역사 수업, 도통 비슷한 업체가 나타나질 않아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진귀한 경험, 아픈 다리 달래기 등의 세 가지 키워드로만 말씀을 나누면 부모님들은 척척 탑승을 결정하신다.

붐비는 청계천변을 벗어나 을지로 공략

 등불축제와 스케이트장 덕에 손님을 모으기는 쉬우나 너무 붐벼서 목적지는 무조건 을지로로 향했다. 인파가 붐비는 곳을 인력거 타고 달리는 기분이 좋긴 하나 채 5분도 가지 않는다. 곧 다른 차량행렬과 섞어 똑같이 교통 체증에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 개발한 을지로 코스에 대한 반응도 살필 목적도 있고 하여 이브 날은 손님들이 따로 부탁하지 않는 한은 을지로로 실어 날랐다. 이전 편에서 설명한 대로, 을지로는 서울이라 믿기 힘든 쓸쓸하고 적막한 느낌이 있어 인파에 시달리는 가족 관광객들에겐 아주 괜찮은 곳이다.

우선 청계천에서 동대문 방향 도로로 접어든다. 자전거는 바깥 차선 끝자리 주행이 원칙이니 그에 따라 길을 잡는다. 을지로가 나오는 청계 2가 사거리까지는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이나 등불축제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곁눈질로 보며 지나가기엔 최적의 코스다. 10여 분 정도 교통 흐름에 맞추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한화 빌딩 앞 넓은 공터에 잠시 올라탄다. 얼마 전 낙서 테러 이후 다시 복원된 베를린 장벽, 그 앞에 서있는 한국 최초 100m 높이를 넘긴 삼일 빌딩을 보여준 뒤 청계 2가 사거리를 건넌다. 그리고 오늘밤 대부분의 손님들이 만족했던 숨겨진 장소로 이동한다.

저자 이미지
인력거 끄는 남자조남훈

"북촌을 찾은 손님들을 인력거로 나릅니다.

찾아가면 좋지만, 막상 발걸음하기는 어려운 장소를 주로 갑니다."